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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수첩에 기록했던 일기가 ‘김대중 망명일기’란 제목으로 출간됐다는 뉴스가 지난 23일 여러 조간신문에 보도됐습니다.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DJ가 수첩 여섯 권에 자필로 쓴 223편의 기록을 3남인 김홍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해 7월 유품 중에서 발견했고,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의 판독을 통해 이번에 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DJ는 일본에 출장을 가 있던 중 10월 17일 유신 선포 소식을에스넷 주식
들었습니다. 이후 미국과 일본 등을 돌며 국내에 들어오지 않다가 1973년 8월 8일 도쿄에서 납치됐습니다. 수첩에 쓴 일기가 끝나는 시점인 5월 11일에서 이때까지 일기를 계속 썼다면 두 권이 더 있었을 것이지만 행방이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일기는 DJ가 생전에 그 존재를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김홍걸 이사장은 “알라딘체험머니
예전 의원 시절에 내 보좌관 하던 친구가 종이 박스에 들어 있는 걸 발견했는데, 하마터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뻔했던 걸 찾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 해외 체류 시절 일기를 기록한 수첩과 그 원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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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판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결기로 자신의 운명과 삶에 맞섰던 한 인간의 치열한 모습이 펼쳐져 있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유신 선포일인 10월 17일 당일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나는 이 일기를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주식급등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이 책에서 왠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대략 세 부분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번 사태(유신 선포)에 가장 뜻밖인 것이 북한 측이 미리 내통하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김일성 정권이 지금까지 “인민의 자유”를 부르짖고 남한에서의 민주주의 발전을 주장하던 것이 한낱 거바다이야기 온라인
짓이었으며 그들도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에 불과한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라고 일본의 많은 언론인이 주장한 말이 옳다고 생각된다.”(1972년 10월 22일) “오늘 남북적십자 평양 회담이 열리고 북한에서도 남한과 보조를 맞추어 헌법 개정을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북 간 사태의 배후에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10월 24일)
그러니까 유신 선포는 남북한 모두 독재 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북한에게도 좋다는 생각에 북한도 묵인한 것이라는 자신의 정세 판단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가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해 예리한 판단을 하고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해석이 나옵니다만, 잠깐.
이게 왜 새로워 보이는 걸까요?
DJ는 생전에 수첩 밖에서는 이렇게 날카롭게 북한을 비판하는 말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북한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해 너무나 잘 알면서도 오랜 세월 말을 아낀 것이 됩니다. 뭐, 남북 화해와 평화공존 더 거대한 뜻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다음은 1973년 1월 18일의 일기입니다.
“신문을 보면 이제야 베트남전이 끝난 것 같다. 베트남인의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도 휴전을 바라는 심정이 절실하지만, 우리 한국의 젊은이가 치욕스러운 세계의 눈초리 속에서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치욕스러운 세계의 눈초리 속에서 무의미한 희생.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1973년 1월 1일에 별표(*)를 그려 놓고 적었던 부분도 좀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는 나의 조국의 민주주의 희생을 위해서,
남북통일의 장래를 점치는 데 있어서,
나의 정치적 장래와 현재의 위치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다.
이해의 나의 책임은 더욱 중차대해질 것이며
대한민국의 전 국민은 나에게
그들의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의 앞으로의 구체적인 처신은
일본에 가서 정할 것이나
원칙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미증유의 고통과 사경에 신음하는 민주주의를
다시 회생시키는 일이
무엇이냐는 데 판단점을 두고
결코 사적 편의나 공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지지자들이 읽었더라면 감격했을 현하웅변의 문장입니다만, 딱 하나 정말로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1987년 대선에서 단일화를 거부했을 때도 저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요?
숨겨져 있던 유명 정치인의 기록을 발견하는 일은 역사학자들의 입장에서 대단히 가슴 벅찬 일입니다. 공백으로 남았던 당대의 많은 일을 복원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DJ가 걸었던 신산한 길과 그것이 이룬 성취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 그 사료의 가치는 큽니다. 그러나 그 중요한 사료가 특정인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 고무의 근거로 사용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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